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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과 미국은 어떻게 원수가 되었나

  • [데일리안] 입력 2020.01.13 08:26
  • 수정 2020.01.13 22:14
  • 데스크 (desk@dailian.co.kr)

트럼프 지지층이 대이란 적대 정책 선호

정치, 종교인들이 민족주의 감정을 자극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과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데일리안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과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데일리안


미국이 이란 혁명수비대 쿠드스군의 가셈 솔레이마니 사령관을 암살한 후 이란의 보복이 이어졌고, 미국의 강도 높은 경제제재로 중동 위기가 지속되고 있다. 이러한 양국의 대립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이란에 대한 서양인들의 혐오감, 이질감, 적대심은 문명 초창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페르시아 제국이 그리스와 전쟁을 벌였기 때문에, 페르시아 세력이 서구 민주문명을 위협하는 전제적 아시아 제국으로 각인됐다. 페르시아의 후신이 바로 이란이다. 최근 헐리웃 영화 ‘300’에서도 페르시아군이 기괴한 야만인처럼 묘사된 바 있다.


이란족은 무함마드(마호멧)의 등장과 함께 아랍 이슬람 세력에게 정복당했고 이슬람교를 받아들였다. 오랫동안 나라 없이 살다가 16세기에 이스마일1세가 이란 왕조를 창건했다. 그는 자신의 권위를 높이기 위해 무함마드 혈족 칼리프의 후손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이란은 무함마드 혈족의 절대적 권위를 인정하는 ‘시아파’ 국가가 됐다. 이때 이라크 지역도 점령했기 때문에 이라크도 시아파가 다수인 나라가 되었다.


1921년에 쿠데타로 집권한 레자 팔라비가 이란의 마지막 왕조인 팔레비 왕조를 열었다. 2차 대전 때 중립을 선언하자 연합군이 침공했고 영국이 석유, 철도, 담배 등 이란의 이권을 차지하게 된다. 이때부터 서구 세력에 대한 반감이 이란 사람들에게 형성됐다.


이런 민심에 힘입어 1951년에 석유 국유화를 공언한 무함마드 모사데크 민족주의 지도자가 총리로 집권한다. 모사데크는 실업급여 도입, 토지개혁 같은 사회개혁과 반외세 정책을 추진한다. 이권을 잃은 영국이 반발했고 미국에 도움을 청했다. 마침내 미국 CIA와 영국 MI6이 손잡고 모사데크 축출공작을 전개, 팔레비 왕조 친위 쿠데타가 벌어진다. 이른바 ‘아약스’ 작전으로, 미국 정보국이 평시 해외 체제전복에 개입한 첫 사례로 평가된다.


서방 세력을 등에 업고 다시 집권한 팔레비2세 국왕은 충실한 친미 정권 노릇을 한다. 미국을 위한 페르시아의 경찰이라고까지 불렸다. 모사데크는 사망할 때까지 가택 연금당했다. 이권은 미국 등으로 넘어갔고 팔레비는 민족민주 시위대를 유혈 진압했다. 민주주의와 자주를 가로막는 미국에 대한 적개심이 생겨났다.


팔레비는 서구화와 세속주의 정책을 폈다. 미니스커트 같은 자유화다. 그에 반발하는 아야톨라 호메이니 같은 종교지도자를 해외로 추방해버렸다. 그러자 반외세 자주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이란 민중의 운동이 이슬람 종교와 결합해버렸다. 세속주의는 외세의 간섭을 상징하는 것이 됐다.


결국 1979년에 민주화 혁명이 터졌는데 그게 이슬람 혁명이었다. 아야톨라 호메이니가 귀국하고 팔레비 국왕은 해외로 도피했다. 이란은 호메이니가 통치하는 신정국가가 되고 말았다. 좋은 뜻으로 한 혁명이었지만 이슬람 혁명으로 귀결되면서 이란은 최악의 국면에 빠져들었다. 이란 종교지도자는 군, 행정, 사법, 입법부 위에 군림하는 종신직이다. 호메이니는 89년에 사망했고, 그 후예인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가 30년째 종교지도자로 통치하고 있다.


독재이고 사실상의 왕정이다. 독재, 왕정 국가에선 국가보위보다 정권보위가 더 중요하다. 그래서 이란에선 국가 정규군보다 신정체제를 보위하는 혁명수비대가 더 중요하다. 호메이니가 만든 조직이다. 그중에서도 알 쿠드스 여단이 엘리트 조직이고 대외적으로 이란을 수호하는 역할을 해왔는데, 그 수장인 가셈 솔레이마니를 미국이 제거한 것이다. 사실상의 이란 2인자로까지 평가됐던 사람이다. 대통령이 있긴 하지만 혁명수비대의 힘이 더 크고, 이번에 우크라이나 민항기를 ‘실수’로 격추했다는 조직도 혁명수비대다.


79년 이슬람 혁명 후 해외로 도피한 팔레비 국왕에 대해 이란인들의 분노가 컸다. 그런데 미국이 팔레비 국왕의 입국을 허가해버렸다. 이에 분노한 대학생 반미 시위대가 미 대사관에 난입해 52명을 인질로 잡아 장장 444일을 버텼다. 미군의 구조작전은 실패로 돌아갔다. 미국인들에게 엄청난 무력감과 분노를 안겨준 사건이다. 이에 대한 반발이 레이건 정권 수립으로 이어진 측면이 있고, 80년대에 실베스터 스탤론이나 아놀드 슈왈츠제네거 같은 ‘하드 바디’들이 슈퍼스타로 각광받은 것도 이란 미 대사관 인질사태와 연관이 있다.


이 사건으로 이란에 대한 불신과 적개심이 미국인들에게 새겨졌다. 특히 트럼프 행정부 등 보수진영에겐 그 정서가 더 강하다. 이번에 이란이 보복을 공언하자 트럼프는 ‘그렇다면 우리는 52곳을 타격하겠다’고 했는데, 그게 바로 1979년에 억류된 인질 숫자였다. 아직도 기억하고 있는 것이다.


1980년, 미국은 이란 봉쇄 전략에 돌입했다. 여기에 이라크가 호응했다. 이라크는 순니파 세속주의인 후세인 정권이 통치했는데, 자칫 이란의 이슬람 혁명에 영향 받은 시아파들이 봉기하면 정권을 잃을 수 있기 때문에 이란에 적대적이었다. 미국의 지원으로 이라크는 이란과 전쟁에 돌입했다.


당연히 이란 사람들은 미국을 더욱 증오하게 됐다. 이란-이라크 전쟁은 사망자만 125만 명에 달한, 2차 대전 이후 최장기 재래식 전쟁이었다. 전쟁 마지막 해인 1988년에 미군 함정이 이란 민항기를 ‘실수’로 격추시켰다. 전투기로 오인한 것이다. 290명이 사망했다. 미국은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다. 심지어 민항기를 공격한 함장에게 훈장까지 수여했다. 이란 사람들은 치를 떨었다. 반미감정이 치솟았다. 이번에 트럼프가 ‘52곳’을 공격하겠다고 하자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은 ‘숫자 290’을 기억하라고 했다. 88년에 사망한 민항기 탑승객 숫자다.


이란을 제압하지 못한 이라크에게 남은 것은 막대한 전쟁 부채였다. 후세인은 자기가 순니파로 ‘총대’를 맸는데 순니파 왕국들이 빚독촉을 하는 것에 분개했다. 쿠웨이트를 침공했다. 미국의 충견이었던 후세인이 미국에게 골칫거리로 각인된 순간이다. 곧바로 미군이 출격했는데, 여기에 분개한 오사마 빈라덴이 알카에다를 만들었다.


2001년에 오사마 빈라덴이 9.11 테러를 저지르자 미국은 ‘지금이 후세인을 칠 때’라고 여겼다. 말이 안 되는 명분을 내걸며 이라크를 쳤다. 후세인이 무너지자 이란이 이라크 시아파에 영향력을 행사하며 이란의 힘이 커져버렸다. 미국이 자살골을 넣은 것이다. 한편 후세인 순니파 잔당들은 이슬람국가(IS)를 만들어 중동을 최악의 상황을 몰고 갔다.


오바마 행정부는 1980년 이래 이란 압박 정책의 효과가 없고 도리어 이란의 중동 지역 영향력만 더 커졌다는 인식으로, 화해 정책에 나섰다. 그 결과 2015년 핵협정이 체결됐다. 이란은 미국의 IS 공격을 지원했다. 그때 지원을 맡았던 조직이 솔레이마니가 이끄는 이란 혁명수비대 쿠드스군이었다.


2017년에 취임한 트럼프는 오바마의 중동전략을 뒤집었다. 원래 이란에 대한 적개심이 큰 세력이고, 셰일오일로 인해 중동 석유의 중요성이 줄어들었으며, 사우디 같은 순니파 동맹국들이 이란의 영향력 강화를 용인하지 않았고, 트럼프의 지지층이 대이란 적대 정책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그러자 이란에선 대미 강경파의 목소리가 커지고 긴장이 조성됐다.


작년 말에 이라크 내의 시아파 민병대들이 미군기지를 공격했다. 미군이 이에 보복하자 12월 31일엔 군중이 미대사관에 난입했다. 79년 인질사태를 떠올리게 하는 사건이다. 그렇지 않아도 국내 이슈로 난처했던 트럼프에겐 울고 싶은 데 뺨 때려준 격이다. 곧바로 솔레이마니를 폭살해 위기국면을 조성했다. 이란 앞엔 또다시 ‘고난의 행군’이 닥쳤다.


이렇게 오랜 세월에 걸친 적대와 증오의 반복이다. 이란은 석유를 가진 죄로 이권을 노리는 서구 제국에 시달리다 이젠 어디서부터 풀어야할지 알 수 없는 복잡한 매듭 속에 갇혀버리고 말았다. 정치외교 이슈에 광신적 종교가 끼어들어 합리적 해법이 보이지 않는다. 정치, 종교인들이 민족주의 감정을 자극해 정치에 이용한다. 전쟁, 독재, 경제제재로 고통 속에서 살아야 하는 민초들이 측은하다.


글/하재근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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