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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北韓)에 사서 망신당하기도 유분수지

  • [데일리안] 입력 2020.01.13 09:00
  • 수정 2020.01.15 14:43
  • 데스크 (desk@dailian.co.kr)

모닥불이 온 산불로 번질 텐데

북한 측의 ‘웃는 얼굴에 침 뱉기’

안보 무너지면 누가 책임지나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뉴시스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뉴시스


우리의 안보의식을 휘감고 있는 감정 가운데 하나가 ‘거부감’이다. 과거 권위주의 시절에 안보를 너무 강조한 후유증 혹은 부작용이라고 할 수 있겠다.


북한 김일성 집단의 6‧25 기습남침으로 우리는 엄청난 인적 물적 피해를 입었을 뿐 아니라 자칫 ‘대한민국’이라는 국가 자체를 잃을 뻔했다. 한반도에서 살아온 사람들이 ‘한민족’이란 연대감‧동질감‧공속(共屬)의식을 나눠 갖게 된 이후 처음으로 저질러진 일방의 대규모 동족살해행위였다.


직접적인 피해도 엄청났지만 정신적 피해 또한 결코 덜하지 않았다. 겨레붙이의 일단이 동족집단에 대해 그처럼 잔인하고 무도할 수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맨 정신으로 이해하고 감내할 수 있었겠는가. 그래서 잊지 말자고 한 것이다. 국방력 강화는 정부의 책임이지만 ‘정신무장’은 국민의 몫이다. 국민 각자가 각자에 대해 당연히 권유하고 요구할 수 있는 권리이자 의무라고 하겠다.


모닥불이 온 산불로 번질 텐데


그런데 국가통치 주체들의 민주적 정당성에 대한 비판과 저항이 고조되면서 이들이 내세웠던 가치까지 불신의 늪에 내던져지는 상황이 조성됐다. 우리 사회 일각의 만성적인 ‘안보 거부감’이 이에서 비롯되었음을 부인하긴 어렵다. 그러나 이게 원인 그 자체는 아니다. 불이 잘 붙고 잘 타게 하는 조건과 직접적인 방화행위는 엄연히 구분된다. 6‧25까지 겪었으면서도 전향하지 않은 김일성 추종자‧공산주의자들이 암약하며 이념투쟁의 기반을 강화했다. 이들이 우리사회의 민주화세력에 교묘히 편승하거나 교활하게 조종하며 정치‧사회적 기반을 넓혀온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니까 악동 몇몇이 작심하고 동네 꼬마들을 꼬드겨 산자락에 불을 놓은 격이다. 그게 들불이 되고 산불이 되어버린 게 대한민국의 안보 현실이다. 대다수 국민들이 불을 끄기에 애쓰고 있어 진화가 되긴 하겠지만 북측 김정은 반민족 집단의 선전선동 책동이 워낙 집요해서 상황이 녹록하지는 않다.


추미애 법무부장관이 지난 3일 취임사를 통해 ‘줄탁동시(啐啄同時)’ 운운하던데 생각해보면 김일성 패거리가 6‧25 때 믿었고, 그 이후 지금까지 획책해온 바가 바로 그것 아닐까? 북측의 기형적 폭정집단이 온갖 선전선동과 각종 도발로 콕콕 쪼아댄다. 우리 안에 넓고 깊게 형성되어 있을 것이라고 저들이 믿는 내응세력이 이에 호응한다. 대다수의 우리 국민은 대수롭잖게 보고 있지만 장난으로 피운 모닥불이 온 산을 다 태울 수도 있다는 경각심은 가져야 하지 않을까?


문재인 정권의 김정은 환심 사기, 김정은에 읍소하기가 남북관계의 정형으로 굳어질 것 같은 분위기에 기가 막혀 다시 안보현실을 돌아보게 된다. 이제는 백주에 서울 한복판에서 김정은을 찬양해도 괜찮은 세상이 열렸다. 진보‧좌파 정권 3대의 업적이다(언젠가 업보로 되돌려질 것 같기는 하지만). 김대중 전 대통령은 ‘햇볕정책’이라는 동화 제목 같은 정책을 만들어 냈다. 그것으로 겹겹이 껴입은 북한 체제의 폐쇄성을 해소해낼 수 있을 듯이 국민들을 오도했다.


북한 측의 ‘웃는 얼굴에 침 뱉기’


그건 극히 비상식적인 계산이었다. 이솝우화 ‘햇볕과 북풍’처럼 DJ의 ‘햇볕정책’도 우화였을 뿐이다. 북한 체제의 폐쇄성이 전적으로 외인(外因)에 의한 것이라면 모르겠거니와 그건 거의 전적으로 내인(內因)에서 비롯됐다. 그런데 진보‧좌파 정권은 대를 이어가면서 우화를 철칙화했다. 한국의 국가원수가 북한 지배자와 친교를 맺고, 그의 신뢰를 얻어낼 수만 있다면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은 해소되고 평화구조가 정착될 듯이 국민들에게 선전을 한 것이다. 국민 모두가 지켜봐 온 것처럼 그 정도는 갈수록 심해졌다. 지금 문재인 대통령과 그의 참모들은 김정은 마니아라고 해도 될 지경에 이르렀다. 대중가요 ‘무조건’ 내용 그대로다.


북한이 호응이라도 해 주면 좋겠는데, 오히려 거꾸로만 간다. 제발 옆에 오지 말라고 지청구를 한다. 지난해 2월 하노이에서 열렸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사이의 회담이 결렬된 후 북한 김정은 세력이 문 대통령을 대하는 태도는 오만과 무례로 넘쳐나고 있다. 원래 예의라곤 없는 집단이지만 그 증상이 병적으로 심해지고 있다.


문 대통령과 참모들의 자업자득이라고 볼 소지가 더 많다. 예컨대 이런 것이다. 정의용 청와대 안보실장이 미국에서 열린 한미일 고위급 안보협의회에 참석하고 10일 오후 귀국했다. 인천공항에서 기자들을 만난 정 실장은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김정은의 생일에 대해 덕담을 하며 “문재인 대통령께서 김 위원장에게 꼭 좀 전해줬으면 좋겠다”고 당부하더라는 자랑을 늘어놨다. “나의 외교역량이 이 정도다!” 그걸 과시하고 싶었던 것일까? “문 대통령님, 제가 가서 한 건 해왔습니다.” 그렇게 자랑하고 싶었을까?


안보 무너지면 누가 책임지나


이런 경우를 두고 매를 번다고 한다. 김계관 북한 외무성 고문이 11일 담화를 통해 우리더러 “주제넘게 북미 사이에 껴든다”고 비난했다. “남조선당국이 숨 가쁘게 흥분에 겨워 온몸을 떨며 대긴급통지문으로 알려온 미국 대통령의 생일축하인사라는 것을 우리는 미국 대통령의 친서로 직접 전달받은 상태”"라고 조소를 보냈다. 담화에는 이런 말도 있다. “한집안 족속도 아닌 남조선이 우리 국무위원장에게 보내는 미국 대통령의 축하인사를 전달한다고 호들갑을 떠는데 저들이 아직도 조미관계 중재자 역할을 해보려는 미련이 의연 남아있는 것 같다.”


이에 앞서 지난 7일 문 대통령은 신년사에서 “평화통일의 의지를 다지는 공동행사를 비롯해 김정은 위원장의 답방을 위한 여건이 하루빨리 갖춰질 수 있도록 남과 북이 함께 노력해 나가길 바란다”고 간절한 소망을 피력했다. 그런데 돌아온 것은 극단적 조롱과 비난이다. 문 대통령의 기분이 어떨지 궁금하다.


지금 윤석열 검찰총장에 대해 전 정권적 성토‧비난‧경고가 이어지고 있다. 그 뒤에 문 대통령이 있으리라는 것은 자연스런 추측이다. 윤 총장은 살아 있는 권력이든 죽은 권력이든, 법을 범한 사람에 대해 수사를 하고 그 결과의 판단을 법원에 묻겠다는 입장을 지키고 있다. 그건 검찰총장의 당연한 책무다. 그런데 정권의 핍박이 자심하다.


그러면서 김정은에 대해서는 살갑기가 말로 다하기 어려울 정도다. 하다하다 트럼프의 생일축하 인사를 김정은에게 대신 전해줄 기회를 얻었다고 감지덕지하는 모습까지 보였다. 이런 식으로 북한을 대하는 탓에 국가의 안보태세는 이완되고 국민의 안보의식은 무디어 진다. 이로 인해 심각한, 회복될 수 없는 안보 위기상황이 조성된다면 그 책임을 누가 어떻게 질 것인가.


(혼자만의 느낌인지 모르겠지만) 대통령 한 사람에 의해 국가의 기반과 근간이 흔들리는 상황은 공포스럽기까지 하다. 설마 우리의 완전한 무장해제를 우리 스스로 선언하는 일이야 있겠는가. 그렇지만 그런 일은 절대로 안 일어난다고 확신할 수도 없으니 이 노릇을 어쩌나.


글/이진곤 언론인·전 국민일보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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